어느푸른저녁

익숙한듯 낯선 풍경 속으로

시월의숲 2011. 5. 5. 23:11

며칠 감기로 고생했다. 지금은 몸살기운은 사라졌지만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대기는 유해한 것들로 가득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인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불쾌한 공기가 몸 속에 들어온다. 텔레비전에서는 최악의 황사라고 떠들어댔고, 정말로 온 사방이 누렇고 뿌연 먼지들로 뒤덥혔다. 기침이 멈추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일까. 오늘은 모처럼의 공휴일이었고 나는 오후 한 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 그동안 잠이 너무 모자라는 생활을 해왔던가. 모처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늦잠을 잤더니 기분이 좋았다. 날씨는 무척 맑았으나 조금 더운듯 했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이곳 저곳의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먼 곳에의 여행이 아니더라도 가까이에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문득 내가 태어난 곳의 풍경조차도 너무 모르고 살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이 감정을 향수라고 해야하나. 아니다. 나는 거의 주말마다 고향에 다녀오는 것이다. 그런 내게 향수라니, 우스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향수라는 것이 반드시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만 해서 생기는 감정은 아니리라. 고향에 있지만 내가 보지 못한 고향의 풍경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하지만 가보지 못한 곳에의 열망을 향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향수라는 것은 내가 몸 담았던 곳과 나의 추억이 얽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의 그리움이나 열망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도 내가 태어난 곳의... 아마도 그것은 내가 나를 더 잘 알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내가 태어난 곳의 풍경을 본다면 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곳의 공기와 사람들, 냇물과 나무들, 흙길과 논밭, 낡은 집들과 절, 남루한 강아지와 허물어져가는 담장과 뿌연 유리창과 허름한 버스정류장, 페인트가 벗겨진 오래된 간판과 마을버스... 이상하다. 이렇듯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리움의 정체는... 이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일까. 하지만 한없이 그 풍경 속에 머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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