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가수의 재발견, 노래의 재발견

시월의숲 2011. 7. 12. 01:12

<나는 가수다>를 재밌게 보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수많은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챙겨보고 있고, 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처음에는 이 프로그램을 순전히 이소라 때문에 보게 되었다. 그녀 특유의 깊고 중성적인 음색에서 뿜어져 나오는 절절한 감정표현은 정말 사람을 빠져들게 한다. 그녀가 무대 위에 올라서면 무대는 오로지 그녀만의 것이 되고, 관객들은 그녀의 무대에, 목소리에 깊이 빠져든다. 노래도 노래지만 목소리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수는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데 그녀는 나에게 그런 가수이다. 더이상 그녀의 목소리로 변주되는 노래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탈락이 그 자신에게나 나에게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너무 소모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이소라가 더이상 나오지 않음에도 내가 <나는 가수다>를 즐겨보는 것은 '노래' 때문이기도 하다. 알고 있었지만 미처 그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노래, 그런 노래가 있었어? 놀라면서 듣게 되는 노래, 이 노래가 이렇게 편곡될수도 있구나 하면서 듣는 노래. <나는 가수다>는 수많은 가수들의 향연이기도 하지만 다시 말해 수많은 노래들의 향연이기도 하다. 과거에 들었거나 전혀 들어보지 못한 노래들이 지금 현재의 가수들에 의해 호명되어 새롭게 재탄생된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일은 예상외로 짜릿한 흥분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이소라가 보아의 넘버원을 락버전으로 불렀을 때이다. 발랄한 댄스곡으로만 인식되어 있던 보아의 넘버원이 이소라에 의해 어둡고 격정적인 곡으로 탈바꿈되는 장면은 정말이지 현재까지도 나가수의 백미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도대체 어떤 가수가 그만한 파괴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기존의 가수가 가진 이미지에 대한 반역이고, 그런 반역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만한 가수는 좀처럼 또 없을 것이다. 물론 이소라의 3집 '슬픔과 분노에 관한' 을 들어본 이라면 그것이 그녀의 또다른 모습임을 쉬이 짐작하고도 남겠지만.

 

노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자꾸 이소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래, 노래. 나가수를 보면서 내 가슴에 와닿은 노래들이 몇 있다.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송창식의 '사랑이야', 이정식의 '사랑하기에' 같은 노래들은 내가 잘 알지 못했지만 새롭게 좋아진 노래들이고, 유영진의 '그대의 향기', 이광조의 '가까이하기엔 너무먼 당신', 신성우의 '서시', 이승환의 '천일동안', 이소라의 '제발',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 '너에게로 또다시' 같은 노래들은 원래부터 좋아했지만 더 좋아진 노래들이다. 편곡이 좋았던 것들은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보고 웃지' 와 이광조의 '가까이하기엔 너무먼 당신'이었다. 다들 김범수가 부른 이소라의 '제발'이 좋았다고들 하던데, 이소라를 워낙 좋아하는 나로서는 김범수가 아무리 높은 음을 내질러도(이걸 싫어하는 건 아니다) 원곡보다 좋다할 수는 없겠다. 물론 김범수는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하여 노래를 잘 불렀지만 말이다. 나가수를 보다보면 묻혀있던 노래들이 재발견되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부르는 옛노래들은 물론 세월의 검증을 받아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명곡들이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누군가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어찌 그것들의 매력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명곡의 핵심은 어쩌면 재현 혹은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반복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지만. 나는 무엇 때문에 그 노래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 노래로 하여금 내 눈을 감게 하고 나를 빠져들게 하는 것일까? 멜로디? 목소리? 가사? 그 모든 것?

 

나가수가 화재가 되는 이유는 아마도 가수의 재발견과 노래의 재발견,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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