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연둣빛 잎사귀의 싱그러운 향기

시월의숲 2011. 6. 29. 20:09

에게선 새로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의 싱그러운 향기가 난다. 그는 늘 같은 시간에, 늘 같은 헤드폰을 끼고, 늘 같은 장소에서 농구를 하거나 조깅을 한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도 가까이서 본 적이 없고, 당연하게도 그가 누구인지, 나이가 몇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짐작하거나 상상한다. 항상 여섯 시 이전에 운동을 하는 걸로 봐서 직장인은 아닐 것이고, 멀리서 보기에도 나이기 많아 보이지는 않으니 아마도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 쯤 될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 그가 내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혼자서, 그야말로 묵묵히 농구나 조깅을 하는 모습을 보면 살아있는자가 응당 지녀야 할(하지만 보통은 퇴색되어버린) 빛나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로 전이되어 때때로 어떤 동경심마저 생긴다. 그는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어깨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듯한 팔과 다리를 허공에 휘저으며 뜨거운 태양볕 아래를 힘차게 달린다. 그의 헤드폰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그의 귀를 타고 그의 심장에 전해져서 그가 열중하고 있는 중력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꽃이 피기 직전의 긴장! 그래, 그는 아직 학생의 신분임에 틀림없다. 여느 학생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그것은 스스로 무언가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추어 기꺼이 생활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기를 꺼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려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튼 그에게선 새로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의 싱그러운 향기가 난다. 나는 그의 눈부신 땀이 부럽고, 그의 몰입이 아름답다.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고 그래서 당연히 서로를 알지 못하겠지만. 내가 그의 얼굴과 이름, 그가 듣는 음악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아마도 그 연둣빛은 곧 퇴색되고 말리라. 아름다움이란 그와 나의 거리에 있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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