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더위, 책장

시월의숲 2011. 7. 22. 23:26

1.

이런걸 불볕더위라고 하던가. 뜨거운 여름이 지속되고 있다. 그나마 오늘은 기온이 약간 떨어져서 활동하기가 좀 나았지만, 여전히 대기는 뜨겁다.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점차 괴로워지고, 지나다니는 차들의 행렬에 괜한 짜증이 난다. 차가 없는 탓에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데, 그러면서 느낀 점은 차들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달린다는 점이다. 보행자 신호등이 파란색임에도 불구하고 휙휙 지나다니는 차들을 대할 때면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서둘러서 가봤자 그 다음 신호에서 기다려야 할 뿐인데, 어딜 그렇게 빨리 가려고 하는지. 아직은 차를 탄 사람들의 조급증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차분하던 사람이 차만 몰면 스피드레이서를 방불케 하는 터프한 운전자로 돌변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데,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인간이란 여러가지 면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기질이 있다. 운전하기를 무서워하는 나라면 어떨까? 언제 내 차가 생기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2.

나만의 작은 책장을 가지고 싶다. 나무 냄새가 나는 은은하고 짙은 갈색빛깔의 아담한 책장을. 그런 마음 때문일까. 출퇴근길에 있는 가구점을 지나칠 때마다 한 번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지금 거처하는 곳에 언제까지 있을지도 모르겠고, 적어도 3년에 한 번 씩 이사를 다녀야 한다면 최소한의 물건만 가질 생각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자취를 할 때보다 살림이 꽤 늘었다. 할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남들이 보면 별 필요도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을 많이도 쌓아놓았다. 나도 사실 그것들이 나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 나중에라도 필요할지 모르니까, 혹은 얼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에 이걸 보게 된다면 그때의 나를 기억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하나 둘 모아두게 된다. 그리고는 늘 이사할 때만 되면 후회를 한다. 왜 이렇게 쓸데없는 것들을 모아둔거야? 하면서. 최소한의 것들만 가지고 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책장을 가지는 일도 그래서 망설이게 된다. 그것이 진정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묻고 또 묻게 되는 것이다. 소설가 배수아도 처음에는 책으로 온 방의 벽면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낯설고 가벼운 삶을 위해서(실제로 그녀는 독일에 자주 다니면서 글도 쓰고 번역도 한다) 대부분의 책을 처분하고 최소한의 책만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인터뷰 기사를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 삶의 방식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낯선 이방인이 될 수 있었고 또 그와 같은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내 멋대로 상상해 본다.  나야 뭐 그 정도로 책이 많지도 않고(책으로 둘러싸인 방을 가지는 건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긴 하다), 나와 배수아는 엄연히 다르므로 그녀를 똑같이 따라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것만을 가지려는 태도는 어쨌거나 매력적인 것이고 따라할만 하다. 하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작은 책장 하나 가지는 것 쯤은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책을 아무데나 던져놓거나 이리저리 쌓아놓는 것도 책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이다. 아,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말인지! 이런 걸로 고민하는 걸 보면 나도 참 매력적이지 못한 인간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