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 밤, 그들이 들었을 빗소리

시월의숲 2011. 7. 28. 00:08

오늘 컴퓨터 본체를 만지다가 손가락을 찧고 말았다. 왼손 두 번째 손가락의 손톱부분을 찧었는데 처음의 화끈거림은 가라앉았지만 타자를 치니까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인간의 몸이란 참 귀찮다. 조금만 다쳐도 신경이 쓰여 집중력이 흐트러지니 말이다. 이만한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 그건 바로 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수밖에. 조그만 아픔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엄살을 피우는, 그게 바로 나라고. 바로 내가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아, 왜자꾸 자학모드가 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자학은 너무 진부해서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데. 진부함을 타파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 그것만이 내가 내 나약함으로부터 벗어나는(최소한 벗어났다고 착각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내가 내 진부한 일상을 타파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면, 서울에는 무시무시한 폭우가 몰아쳐 산사태가 나고 사람들이 죽는 재해가 일어났다. 인터넷 뉴스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서도 실감이 안났는데, 퇴근하고 집에와서 텔레비전을 틀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텔레비전 속의 서울은 예전의 반짝반짝 빛나던 서울이 아니었다. 온통 흙빛으로 퇴색된, 마치 죽음의 손길이 쓸고 간 것 같은 우중충한 빛깔의 서울이었다. 도로와 자동차가 물에 잠기고, 산사태가 나서 건물들이 무너지고... 춘천에서는 밤새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펜션이 무너저 봉사활동을 간 대학생들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산사태가 나기전 그들이 잠들었을 그 밤을 생각한다. 그 밤, 그들이 들었을 빗소리와 한순간의 무너짐과 절대적이고 영원한 침묵을. 그들의 젊음과 그들이 지녔을 열정, 꿈, 희망, 기대, 좌절, 증오, 절망 같은 것들이 묻혀버린 그 한 순간을. 설마 건물이 무너져 자신이 죽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잠시 멍해진다. 그런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때론 섬뜩하고 때론 허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원망할 대상이 없는 죽음이란 정말 너무한거 아닌가? 인간은 때론 다른 인간을 원망하면서 슬픔을 덜기도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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