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주황색 하늘

시월의숲 2011. 8. 10. 01:01

1.

비가 자주, 많이 내린다. 길을 걸을 때면 보이지 않는 물속을 걷고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든다. 산소가 부족한 물에 사는 물고기가 된 것 같다.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려보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온도가 몇 도 내려가도 좋으련만. 오늘 저녁 때쯤에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온통 주황색으로 가득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일상적인 노을 풍경도 아니고, 비가 와서 어둑한 풍경도 아닌 온통 주황색 빛으로 가득한 풍경. 마치 주황색 아크릴로 만든 안경을 쓰고 바라본 느낌이랄까.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무언가의 전조처럼, 예감처럼, 징후처럼 느껴지는 주황색의 아파트, 주황색의 나무, 주황색의 도로, 주황색의 자동차, 주황색의 사람들. 불길하지도, 상서롭지도 않은, 다만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변화할 것만 같은 기묘한 느낌. 어제 <제7광구>를 보았기 때문인가? 정체모를 생물체가 튀어나온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풍경이었다. 아, 내 상상력이 조금만 더 풍부했더라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기묘한 느낌이 어쩐지 싫지는 않다. 문득문득 일상의 전복을 꿈꾸는 불온한 마음 때문일까? 

 

 

2.

내가 가입한 인터넷 카페의 누군가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당연히 모르고, 그래서 책을 받기 전까지도 내가 책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가상의 공간을 통해 이뤄지는 현실적인 이야기라니. 내가 가지고 싶었던 시집 몇 권과 소설책 몇 권을 예기치않은 통로로 받고 보니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책을 받기 위해 그에게 내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를 알려주려고 했을 때 든 거부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익명으로만 존재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어느 지역에 살고 이름이 무엇이며 전화번호가 몇 번이라는 개인적인 정보가 알려졌을 때 상대방이 느낄 선입관이 두려웠기 때문에? 사실 그 두 가지는 같은 말일 것이다. 최소한 인터넷 상에서는 내가 나를 드러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 나를 구성하고 있는 일반적인 표식들을 배제한 채 그저 내 생각과 그것을 바탕으로 표현한 글로써 소통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내가 쓴 글에서도 나는 나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나에게 현실의 나만을 보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러내보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사이버 세상에서 익명성은 필수 요수이고, 그것은 개개인에게 더 큰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나이고, 내 안에는 다양한 내가 있다. 현실 세상에서 내가 받은 책의 포장지에 쓰여진 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는 단지 글자와 숫자의 조합일 뿐.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모르고, 언젠가 한 번 마주친다 하더라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나에게 책을 준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고, 내가 그 책을 펼쳐볼 때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주황색 하늘만큼이나 기묘한 일이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의 취향  (0) 2011.08.23
싸움의 기술  (0) 2011.08.19
그 밤, 그들이 들었을 빗소리  (0) 2011.07.28
더위, 책장  (0) 2011.07.22
마지막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요,   (0) 2011.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