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레, 2004.

시월의숲 2011. 8. 25. 23:50

우리는 지속적인 만족을 기대하지만, 어떤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또는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은 사실 짧다. 적어도 의식적인 정신에게는 우연한 현상으로 보일 것이다. 즉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수용하게 되는 짧은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모처럼 과거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들이 형성되고, 불안이 완화된다. 그러나 이 상태는 10분 이상 지속되는 일이 드물다. 아일랜드 서해안 너머에 며칠마다 기상 전선들이 뒤엉켜 덩어리를 이루듯이, 의식의 지평선에서도 불가피하게 새로운 패턴의 불안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미래의 복잡한 문제가 드러나면서 과거의 승리는 이제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광경도 늘 우리 주위에 있는 풍경처럼 스쳐 지나가게 된다.(36~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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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호텔을 건축하고, 만을 준설하는 등 엄청난 프로젝트들을 이루어내면서도, 기본적인 심리적 매듭 몇 개로 그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울화가 치밀 때면 문명의 이점들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게 여겨지는지! 이런 정신적 매듭들이 얼마나 처치 곤란인지 생각하다 보면, 고대 철학자들의 준엄하면서도 비꼬는 식의 지혜가 떠오른다. 그들은 번영과 세련으로부터 물러나 통이나 진흙 오두막 속에 살면서, 행복의 핵심적 요소는 물질적인 것이나 미학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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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여행에 대한 백일몽을 그가 '시인'이라고 묘사하는 고귀한 영혼, 탐구하는 영혼들의 표시라고 여겨 귀중하게 생각했다. '시인'은 다른 땅의 한계를 잘 알면서도 고향의 지평 안에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의 기질은 희망과 절망 사이, 유치한 이상주의와 냉소주의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했다. 기독교의 순례자들처럼 타락한 세계에서 살아가면서도 대안적인 영역, 덜 훼손된 영역에 대한 비전을 버리기를 거부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었다.(5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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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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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휴게소와 모텔에서 시를 발견한다면, 공항이나 열차에 끌린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건축학적인 불안전함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그 야한 색깔과 피로한 조명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립된 장소에서는 이미 터가 잡힌 일반적인 세상의 이기적인 편안함이나 습관이나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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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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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책자가 어떤 유적지를 찬양한다는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위 있는 평가에 부응할 만한 태도를 보이라고 압력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안내 책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곳에서는 기쁨이나 흥미가 보장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별 3개짜리 모나스테리오 데 라스 데스칼자스 레알레스에 들어가기 오래전부터 나의 반응이 다음과 같은 공식적 평가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 벽화로 장식된 웅장한 계단은 위층 수도원 회랑으로 통하는데, 이곳의 예배당들은 뒤로 갈수록 화려해진다." 그다음에는 이런 구절이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여행자는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158~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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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171~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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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세상이 불공정하거나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때, 숭고한 장소들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깎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숭고한 장소들은 우리를 부드럽게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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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에 들어서면 우리의 감수성은 수많은 요소를 향하게 되지만, 그런 요소들의 숫자는 그 공간에서 우리가 찾는 기능에 맞추어 점차 줄어든다. 거리에서 우리가 보고 생각할 수 있는 4000가지 가운데 우리는 결국 몇 가지만 적극적으로 의식하게 된다. 길 앞에 잇는 사람들의 숫자, 오가는 사람들의 양, 비가 올 가능성 등. 버스도 처음에는 미학 또는 기계학의 관점에서 보았겠고, 혹은 더 나아가서 심지어는 도시 내의 공동체들을 생각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도 했겠지만, 점차 어떤 지역을 가능한 한 빨리 가로질러 우리를 목적지까지 실어다 줄 네모난 상자로만 보게 된다. 버스가 가로지르는 지역은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와는 관련이 없으며, 그 밖은 모두 어둠이고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338~3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