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아르테, 2007.

시월의숲 2011. 9. 22. 23:22

내가 바란 것은 오직 하나였다. 누구도 내게 뭔가를 지나치게 강요하지 말고 조용히 내버려둘 것, 그리고 매일 잠시나마 내 허기를 채울 자유를 누리게 해줄 것.(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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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독학자가 그렇듯 나는 책에서 이해한 것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가지들이 갑자기 뻗어나가듯 내가 산발적으로 읽은 모든 것이 서로 엮여 지식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가, 순식간에 의미를 잃어버리고 본질을 놓쳐 같은 줄을 되풀이해 읽은들 아무 소용없고 읽을 때마다 조금씩 더 나를 피해 달아나는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식당에서 메뉴를 몰두해서 읽은 다음 배가 부르다고 믿는 미친 노파 같았다. 아마 이런 맹목성은 독학의 등록 상표인 듯하다. 독학은 훌륭한 교육이 제공하는 확실한 지침을 주지는 못하지만, 공식적인 말과 글이 칸막이를 치고 모험을 금지하는 바로 그곳에서 독학자에게 '생각의 자유'와 '종합'이라는 선물을 선사한다.(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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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난하다는 명목으로 또는 삶의 부당함 때문에 가난한 자들의 영혼이 고귀하다고 인정한 적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대부호들에 대한 증오만큼은 가난한 자들과 내가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젠은 내 잘못을 깨닫게 했고 내게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가난한 자들이 혐오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다른 가난한 자들임을.(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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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늙어가며, 그것은 아름답지도 좋지도 즐겁지도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온 힘을 다해 지금 뭔가를 구축해야 한다. 매일 자신을 극복하고 그 매일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양로원을 항상 머릿속에 떠올려야 한다. 자기만의 에베레스트를 한 걸음 한 걸음 기어오르고, 그래서 그 발걸음이 조금씩의 영원이 되게 해야 한다. 미래. 그것은 산 자들이 진정한 계획을 가지고 현재를 구축하는 데 쓰인다.(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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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법이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말하거나 읽거나 쓸 때,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었거나 읽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아름다운 표현이나 문체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문법을 공부하면 언어의 아름다움을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 문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언어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고,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언어의 벌거벗은 몸을 보는 체험이다.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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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욕망은 매일 우리를 바로 어제 우리가 패한 전쟁터로 인도한다. 그곳은 태양이 작열하는 대낮에는 늘 새롭게 정복해야 할 땅으로 비친다. 욕망을 그렇게 우리를 이끌어 십자가에 못 박고, 설사 우리가 내일 죽을지언정 한 줌 먼지로 변할 온갖 제국을 건설하게 한다. 우리가 제국이 몰락할 것임을 안다 해도 그 앎은 지금 제국을 구축하려는 갈증과는 무관하다는 듯 욕망은 우리에게 죽는 순간까지 정복이 곧 실현될 것이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반복되는 계획들을 제공하면서 우리가 현재 가지지 못한 것을 더욱 욕망하는 능력을 한껏 부추기다가, 어느 이른 아침 시체로 가득한 풀밭에 우리를 방기한다.(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