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차가운 손

시월의숲 2011. 10. 9. 22:13

예전에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꿈꾸는 친구, 내게 친구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친구에 관한 저자의 소박하다면 소박한 바람을 담은 글이었던 것 같다. 언제든 부르면 달려오거나 달려갈 거리에 있었으면 좋겠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고 등등. 그 글을 읽으면서 아, 나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허물없고, 부담스럽지 않으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에 살고 있었으면. 하지만 그건 단지 바람일 뿐이었을까? 너무나 이상적이고 현실성 없는 생각일 뿐이었을까?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한 내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을.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했다는 것을. 그런 생각이 든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이 세상에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큼 절망적인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우리는 늘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마음을 터놓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그래서 허황된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며, 서로의 외로움을 드러내보이는 것을 치부로 여기고, 그래서 늘 채워지지 않는 말들, 마음에 가닿지 못하고 흩어지고 부서지는 말들만 늘어놓는다. 수없이 많은 말들의 홍수 속에서 쌓이는 것은 허무함뿐. 그래서 우리는 모두 불구이며 불구의 삶을 살고 있다. 친구란 무엇인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스스로 나를 견고한 벽에 가둔 것은 아니었나? 나는 내 누추하고 보잘것 없는 손을 내밀 자신이 있는가? 다른 이의 손을 잡을 자신이 있는가? 나는 묻고 또 묻는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How to Read?  (0) 2011.10.17
거의 완벽에 가까운 날씨와 그렇지 못한 마음  (0) 2011.10.13
시월의 숲으로  (0) 2011.10.05
슬픈 짐승  (0) 2011.09.30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0) 201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