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How to Read?

시월의숲 2011. 10. 17. 23:43

웅진지식하우스에 나온 지젝의 'How to Read 라캉'을 읽고 있다. 읽고 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읽고는 있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글자만 따라 읽는 수준이다. 마치 글자만 따라 읽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처럼. 애초에 나는 이 책을 잘못 선택했다. 라캉은 커녕 프로이트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적 수준의 프로이트를 가지고 라캉을, 그것도 슬라보예 지젝이 쓴 라캉을 읽으려고 했다니!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던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 얄팍한 지식과 근거 없는 자신감이 놀랍기까지 하다. 나는 때론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읽으려고 하는 심사는 무엇인지. 십분의 일도 채 이해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가닥이 잡히지 않아서 인터넷 검색창에 라캉이라 치고 엔터키를 눌렀다. 무수히 쏟아지는 라캉에 대한 글들. 첫 페이지에 나와있는 블로그의 글들을 대충 읽는다. 라캉의 개념들을 어렵게 풀어놓은 글도 있고, 비교적 쉽게 풀어놓은 글도 있다. 그의 생애에 관한 글과 그의 사상이 현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글 등등. 하지만 인터넷 검색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프린트를 했다면 A4용지로 몇 장이나 되었을 분량의 깨알같은 글을 모니터 화면으로 다 읽기에는 눈에 부담이 많이 가는 탓이다. 그들은 모두 라캉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길고 긴 글을 완성해 내었다. 어디 라캉 뿐일까. 정신분석 전반에 걸친 지식과 사회, 문화적 이슈 혹은 철학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고(내가 읽기에는 난해하지만) 거침없이 표현해 낸다.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글쓰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그런 지식과 논리와 글솜씨가 가능하냔 말이다. 그들은 모두 평론가, 작가, 철학자 혹은 과학자인가? 이건 비아냥거리는 말이 아니다. 믿어지지 않는 놀라움의 표현이다.

 

나를 기죽게 하는 수많은 글들 속에서도 그나마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이유는, 어떤 글에는 내가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매력이란 아마도 내가 관심있는 분야, 내가 그나마 좀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한 글을 만났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것일게다. 내가 관심없는 분야의 글은 아무리 잘 쓴 글이라 하더라도 아예 찾아서 읽지를 않을테니까. 하지만 내가 부러운 것은 내 관심 여하를 떠나서 그들의 왕성한 지적호기심이다. 그들은 지적호기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읽고, 연구하며, 관찰하고, 표현한다. 나는 그들의 그런 지적인 호기심으로 무장된 열정이 부럽다. 나는 진정으로 그 열정을 닮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것에 호기심과 관심이 생기려면 단지 그것을 바라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무엇을 바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자극시키는 것을 찾아서 그것을 직접 해야한다. 그 속에 나를 던져야 한다. 새로운 장소에 가보기도 하고, 전혀 관심이 없는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생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던지 하는 등의. 아니면 신도림 역 앞에서 미친척 춤을? 나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엉뚱해져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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