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거의 완벽에 가까운 날씨와 그렇지 못한 마음

시월의숲 2011. 10. 13. 20:01

백퍼센트 완벽한 날씨가 있다면 요즘같은 날씨가 아닐까? 이건 그 자체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 머리속은 일에 대한 신경으로 어지럽다. 이건 날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날은 그저 붉게 물든 나뭇잎을 바라보거나 잘 마른 땅위를 천천히 걷거나 버스를 타고 훌쩍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날씨를 즐길만한 여유도 감각도 모두 소멸되어 버린 느낌이다.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여유로움이란 어떤 것인지, 먼 옛날의 언어를 듣는 것처럼 생경하기만 하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아파서 거의 한 달이 넘게 병가를 내버렸다. 당연하게도 그의 일은 내 몫이 되었다. 그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아플 수 있고(아니, 늘 아프고), 아픔이란 큰 슬픔과 절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내가 슬픈건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밀려드는 일에 있다. 처음 내가 이곳에 오면서부터 해야했던 일들, 하나의 일이 끝나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또 밀려드는 일들. 이건 마치 누군가 악의적으로 내가 조금의 여유도 가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투정은 목구멍으로 삼킨채 다른 이들이 던지는 위로의 말을 들으며 그저 웃기만 한다. 어쩔 수 있을 것인가? 다만 나 자신이 조금 불쌍하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날씨에 미안할 뿐. 아무래도 단 것을 좀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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