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냥 그런 것일뿐

시월의숲 2011. 10. 25. 20:28

1.

고요한 나날들. 하지만 단풍은 더욱 짙어지고, 공기는 조금 더 차가워졌다. 고요함을 가장한 전쟁의 나날이라고 해야할까, 이 가을을. 무표정한 사람들 사이로 무표정한 내가 걸어간다. 사람들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보이지 않는 '그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들의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손끝에서 감각을 지워버리는 그것. 나는 그것의 무게를 느끼는가? 나는 진정 눈물을 흘릴 수 있는가? 낙엽을 밟으며 걷는 일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래서 자꾸만 걷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시간, 이 공간 속에서 나는 무얼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나는 무엇일수 있는가? 삶이 말장난처럼 유쾌한 것이라면.

 

 

2.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을 읽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나 미시마 유키오처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역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요절했다. 단편들이 모여있는 소설집인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다. 앞에 언급한 두 작가에 비해 스토리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는듯,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간다. 이 사람의 장편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단편소설을 잘 쓰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당분간 그리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3.

내일은 도서관에 가야겠다. 저번에 다른 이의 이름으로 빌려온 잡지를 반납해야 한다. 사진을 가져가서 대출증을 만들어야지. 아직까지 이곳에 와서 대출증을 만들지 못했다. 도서관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지금껏 대출증 만드는 것을 미뤄온 탓이다. 이번에 만들어놓으면 귀찮아도 책을 빌려 읽게 되겠지. 나는 나를 조금 귀찮게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통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까.

 

 

4.

어쨌거나, 아쉬워하지 말자. 내 서른 두 번째의 가을을, 지는 낙엽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늘 그렇듯, 그냥 그런 것일뿐. 그렇게 흘러가는 것일뿐. 종은 누구도 아닌 만인을 위하여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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