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2011년 11월 14일

시월의숲 2011. 11. 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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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요즈음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무색, 무취, 무능의 나날들. 무언가에 대해서 또렷하게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그저 흐느적거리며 헤엄치는 해파리처럼 흘러가는 시간에 나를 그저 방치하고 있다. 이러다 나를 이루는 형체가 모두 무너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날씨, 그러니까 겨울이지만 겨울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날씨 때문일까? 날씨 탓을 하는 것은 제일 쉽고도 안일한 일이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과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일에 대한 불안감, 혹은 걱정이 낮은 구름처럼 항시 드리워져 있어 어디론가 몸을 피할 수도 없다. 지금 읽고 있는 편혜영의 <재와 빨강>에서의 '그'처럼 지하로 숨어들어가는 수밖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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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1월이 되었고, 달력은 이제 마지막 잎새처럼 한 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사람들은 2011년 11월 11일이 무슨 대단한 날이라도 되는양 떠들어댔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2011년 11월 11일이 천년에 한 번 돌아오는 날이라고? 천년에 한 번 돌아오는 날은 그날 뿐만이 아니지 않은가? 역시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념하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벽돌을 찍어내듯 똑같은 나날들 속에서 그래도 무언가 기념할만한 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연민이 느껴진다. 인간은 그렇게 나약하고, 감상적이며, 그것을 이용해서 기어코 무언가를 사게 만드는 사회는 천박하기만 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적일 수 있는가? 얼마나 창의적일 수 있는가? 기념하는 습성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천성이라면 이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것조차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주입된 것이라면? '나'는 진정 '나'라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자신있게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 의해서 규정된 '나'가 아니라 오롯이 '나'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나' 말이다. 그런 나를 찾는 길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강요에 이미 너무 많이 세뇌당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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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날씨탓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너무 정신없는 세상에서 정신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보다 고요한 곳, 보다 여유로운 곳, 보다 한적한 곳, 그런 곳에 가서 따뜻한 홍차 한 잔 마시고 오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 너무나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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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가 부른 메이트의 <난 너를 사랑해>. 왜 사람들이 음악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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