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하소연과 푸념 혹은 넋두리

시월의숲 2011. 11. 17. 21:26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며,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건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고, 억울하다면 억울한 일이다. 나는 단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그것을 보여준 것 뿐이다. 물론 돈이 연관되어 있고, 그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소홀함과 부당함 때문에 다소 기분이 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무척 심각한 얼굴로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문서를 가리키며 이것을 누가 작성한 것이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작성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내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얼굴에는 자신이 무척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으며, 그래서 굉장히 화가 나 있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또 어떤 이는 과거의 일을 들먹이며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당위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처 체크하지 못했던 사소한 실수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마치 모두들 자신이 파면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사실은 그 무엇도 그들의 지위나 신분 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함에도) 불안이 그들이 서있는 공간을 돌처럼 딱딱하고 차갑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직급의 사람은 내게 다시 한 번 이번 일이 그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 담당자의 확인을 받으라는 지시를 내렸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그 일을 시킨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담당자는 조금은 귀찮고 짜증나는 목소리로, 자신이 보낸 문서에 보면 다 나와있지 않느냐, 자신은 상부의 지시에 따를 뿐이므로 그들에게 내려질 어떤 처분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하지는 못하지만, 관례 상 그들에게는 아무런 처분도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상사에게 담당자와의 통화 내용을 말했지만, 그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그는 아는 것이 많았지만 모든 일에 지나칠 정도로 조심성이 많았으며(자신은 신중을 기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겠지만), 사람의 말을 잘 믿지 못했고, 그래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 원래 하려고 했던 대로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단순히 하나의 문서에 담긴 지시에 따라 일을 한 나로서는 그 모든 해프닝이 불필요하게 심각하고,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하기 위해 바쳐야 했던 시간과 받아야 했던 스트레스가 무척 억울하게 느껴져 순간 나 자신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사실을 왜 사람들은 인정하기를 꺼리는가?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가? 무엇이 그렇게도 무서운 것인가? 무엇이 그렇게도 아까운 것인가? 본인의 양심에 비추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그에 따라 받아야 하는 처분이 있다면 그에 따르면 될 것이 아닌가? 사람에 대한 실망과, 일에 대한 회의가 들어 기분이 씁쓸하다.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지금 이 상황에서 내 기분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다.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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