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부치지 못한 엽서

시월의숲 2011. 11. 27. 18:01

고작 이틀간의 여행이었는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바깥에서 떠돌다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정이나 여행지 등을 결정하는데 내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직장에서 기획한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꽤 색다른 시간을 보내다 온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충북 청원군의 상수허브랜드와 청남대, 문의문화재마을, 공주국립박물관, 계룡산과 동학사가 여행의 코스였다. 사실 청남대 같은 곳은 그다지 내 흥미를 끌지는 못했는데, 군부시절 만들어진 대통령의 별장을 굳이 구경해야 한다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결코 구경하지 못했을 곳이기에 우리나라 역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었다. 또 대청호를 낀 청남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는 산책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풍경을 제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였다는 사실이 청남대를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지게 했다.

 

별 것 아닌 여행이라도 일단 여행 후 남겨지는 것은 피곤일 것이다. 어제 도착해서 저녁도 먹는둥마는둥 하고는 잠을 자기 시작해서 오늘 오후 2시 넘게까지 잠을 잤다. 아침에 눈이 떠지긴 했는데 일어나지 못했다. 오늘이 휴일이 아니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방을 닦고, 오랫동안 모아둔 재활용 쓰레기들을 버리고, 텔레비젼을 보았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자르러 갈까 생각했지만, 귀찮아서 가지 않기로 했다. 내일이나 모레 쯤 퇴근하는 길에 미장원에 들르면 될 것이다. 여행을 가기 전에 자른 손톱이 그 사이 꽤 길어있다. 시간의 흐름은 무섭고도 잔인하다. 틈을 주지 않는다. 공주국립박물관에서 본 무령왕릉의 출토물들만이 시간의 흐름에서 비켜있는 것 같다. 아, 그 아득한 시간! 박물관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무덤의 출토물들이 찍혀있는 엽서 한 세트를 샀다. 부치지 못한 편지만이 완벽히 수신인을 찾아가는 것처럼, 부치지 못한 엽서는 보내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완벽하게 수신인에게 도착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살아있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7번 국도   (0) 2011.12.11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0) 2011.12.08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건 없어  (0) 2011.11.24
하소연과 푸념 혹은 넋두리  (0) 2011.11.17
2011년 11월 14일  (0) 2011.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