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시월의숲 2011. 12. 8. 21:33

1.

이번 주 토요일에 이사를 한다. 오늘 여름옷과 책을 박스에 담아놓았다. 내일 본격적으로 짐을 쌀 예정이다. 몇 번 이사를 다녀보았지만 할 때마다 늘 귀찮고, 번거롭고, 싱숭생숭한 마음이 든다. 이런 어설픈 마음은 비단 이사를 해야하는 데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며칠 전, 내 뜻과는 상관없이 근무처를 옮기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관외가 아니라 관내로 옮기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이곳에서 근무한지 채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옮기게 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워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어디로 가야하지? 나는 아직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와 맞물려 이사까지 하게 되었으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공중에 붕 뜬것 같은 마음을 달래기가 힘들다.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중요한 것들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부랴부랴 피난을 가야하는 마음이 이와 비슷할까? 비약이 심하지만, 아무튼 지금 내 심정을 표현하기에는 꽤 적당한 것 같다. 몸은 '지금'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저 먼 곳에서 서성이고 있다. 한마디로 심란하다.

 

 

2.

짐을 챙기면서, 나는 왜 쓰지도 못할 것들을 이리 모아두었지? 하는 생각을 1분에 한번씩은 하는 것 같다. 이건 이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인데, 미련없이 버려야지 하면서도 항상 어딘가에 모아두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건 나중에 볼 가치가 있을거야, 이건 나중에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면서 정작 필요치 않은 물건들을 쌓아두는 것이다. 머리로는 버려야지 하면서도 왜 몸은 따라주지 않는 것인지 정말 알 수 없다. 오래된 것들에서 매력을 느끼는 성향 때문인가? 하지만 당장 필요치 않은 물건들(나중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은 오래된 것들이 아니지 않은가? 혹은 나중에 내가 모아둔 것들을 보면서 무언가 추억하기 위해서? 하지만 오랜 후에 그 물건을 볼 때면 이것이 어떻게 해서 내 손에 들어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았나? 그것도 아니라면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살면서 그의 버리지 않는 성향을 알게 모르게 보고 배웠기 때문에? 하지만 그건 내가 진저리칠만큼 싫어한 것이 아니었나? 모르겠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지도,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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