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슬픔은 그곳에서

시월의숲 2012. 3. 11. 20:51

*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언제나 무언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아니, 어쩌면 무언가, 누군가에게서 달아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항상 맨발이다. 꿈 속에서 쫓기는 일이 마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인듯 꿈 속에서건 현실에서건 불안하고 힘이 든다. 아무런 맥락도 이유도 없는 달아남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왜 나는 항상 맨발로 그렇게 쫓기고 있는 것일까? 내 무의식에서는 과연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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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몇 권 구입했다. 며칠 전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를 끝내고(드디어!) 이번에는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고 있다. 한강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데, 이번에 읽고 있는 소설도 그답게 진지하고, 가슴 먹먹한 이야기일 것 같다. 그의 전작인 <바람이 분다, 가라>로 좋았는데, 제목만 놓고 봐서는 이번 소설이 더욱 마음에 든다. 그 외에 배수아와 김연수의 새 소설과 신형철의 산문집도 구입했다. 한동안은 그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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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의 책머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라고. 나도 그처럼, 자부도 체념도 없이 담담하게 무언가를 하는 일이 삶의 거의 전부라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바로 뒤따르는 생각. 나는 무엇이 내 삶의 전부인가? 지금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자부도 체념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나는 아직도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시간의 어떤 통로에서 서성대는 난장이'인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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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는 말의 기만성을 잘 알고 있지만,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뭇 다른 일인 것 같다. 그 사람이 하는 말, 그 사람이 가진 화, 그 사람이 가진 아픔 등을 어느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대화를 하다보면 가슴이 아플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그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는데서 오는 고통일까?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통도 없는 것일까? 이해란 얼마나 오해에 가까운 말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를 이해하고 있다고 항상 생각했다. 완벽하게는 아닐지라도 어느정도는 나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그건 어쩌면 터무니없는 오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답답함과 고통이 그것이 오해였음을 말해주는 증거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슬픔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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