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청양고추

시월의숲 2012. 3. 2. 23:02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청양고추를 좀 샀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을 한 나 자신을 위로할 겸(위로하기 위해 청양고추를 산다는 건 어딘가 좀 이상하지만 뭐, 암튼), 쌓인 스트레스도 풀겸 뭔가 매운 것을 먹고 싶었던 것이다. 잡곡 반과 흰쌀 반을 섞어 밥을 안치고,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청양고추를 썰어넣어 국을 끓였다. 햄과 맛살, 청양고추를 볶아 반찬을 만들고, 마늘과 청양고추를 넣어 멸치볶음을 만들었다. 김치와 김을 꺼내고 뜸이 다 든 밥을 그릇에 담고, 된장국과 나머지 반찬들을 꺼내 밥을 먹었다. 된장국도 맵고, 햄볶음도 맵고, 멸치볶음도 매웠다.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는데, 불현듯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마도 고추를 볶을 때 나온 연기가 방안 가득 퍼졌기 때문이리라. 밥을 먹다말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대기는 저녁인데도 어둡다기보다는 흐리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이 습기에 잠식되어 버린 것인가? 그래, 오늘은 낮동안 계속 이슬비가 내렸었다. 나는 밥상 앞에 앉아 내가 먹다 남긴 밥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좀 전 보다는 덜 매운 듯 하였으나 여전히 매운 공기는 사라지지 않는듯했다.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는데, 불현듯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다 청양고추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청양고추에게 정말 미안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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