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꽃병이 그려진 그림

시월의숲 2012. 3. 19. 21:52

꽃병이 그려져 있는 유화작품을 하나 샀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여러 점의 그림을 들고와서는 좀 팔아달라고 했다. 학생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하면서. 나는 얼마냐고 물어보았고, 그는 삼만 원이라고 했다. 나는 조금 비싼듯하다고 말하였는데, 그는 전혀 비싼 것이 아니라고, 이 정도 크기의 유화작품치고는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예전에 화실을 다닌적이 있는데 화가였던 선생님이 유화를 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수채화를 그렸지만, 언젠가 유화도 그려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였을까? 나는 서슴없이 꽃병이 그려진 유화작품 한 점을 집었다. 삼만 원을 내어주고 난 뒤, 그는 떠났고, 나는 그 그림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유화를 직접 보았다고는 하지만 이미 그건 오래전 일이고, 사실 나는 유화가 어떤 질감이었는지, 어떤 느낌을 품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물감의 질감과 덧칠된 느낌이 어쩐지 붓으로 직접 그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붓으로 물감을 여러번 덧칠한 느낌이 아니라 물감을 캔버스에다 붙인 느낌이랄까? 하지만 미술학도가 아닌 나는 그것이 진정 붓으로 그린 유화작품이었는지, 단순히 모조품이었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내가 산 것은 무엇이었나? 나는 오래전 내 꿈과 추억을 산 것일까, 아니면 단지 내 허영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 모든 것이 다 맞거나, 혹은 다 그르다. 한가지 확실한 건, 오늘 내가 산 꽃병이 그려진 그림은 내가 최초로 산 사치품(무언가를 꾸미는데 쓰는 혹은 무용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쩐지 마음이 헛헛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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