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쨌든 너를 이해하고 싶은 거라고

시월의숲 2012. 7. 23. 20:05

소설을 무슨 재미로 읽어요?

어색함을 덜어보고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책 이야기가 나왔고, 무슨 책을 주로 읽느냐,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문득 그런 질문을 던졌다. 자신은 주로 추리소설을 읽는데, 나는 주로 순수소설(?)을 읽는다는 말을 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추리소설은 스릴이나, 긴장감, 재미가 있는데, 소위 순수문학이라 일컫는 한국소설이나 서양 고전 소설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읽느냐고. 나는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는데, 나는 한번도 진지하게 내가 소설을 왜 읽는지, 소설의 재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저 재미로 읽는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으나 그건 그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아닌 것 같았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생각나는대로 인간의 감정이 어떻고,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어떻고, 현실세계가 어떻고, 공감이 어떻고 하는, 두서없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런 말을 할만큼 소설을 읽는 재미에 푹 빠진적이 있는지, 또 그만큼 많은 소설을 읽기나 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는 진지한 사람이라 내가 하는 횡설수설을 잠자코 들어 주었고, 급기야는 그렇군요, 정말 대단해요, 라는 짧은 칭찬의 말까지 해 주었다. 그리고는 이내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대화를 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그가 내개 했던 질문만이 계속 맴돌았다. 소설을 무슨 재미로 읽느냐는 말은 다시말해 소설을 왜 읽느냐라는 말로 귀결되는 것이고,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한번도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그건 어쩌면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 결정적인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묻지 않아도 때때로 그 물음 앞에 서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어떤 근원적인 질문과 대면하게 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인간'으로서 더욱 깊어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나를, 너를, 우리를 이해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