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얼음을 한 다섯 개쯤 물고서

시월의숲 2012. 7. 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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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도 중순으로 접어든다. 올 여름은 보폭이 큰 사람처럼 성큼성큼 다가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더위 속에 허덕이는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다. 장맛비가 내리는데도 온도는 떨어지지 않는다. 습도가 높아 공기중이 아니라 마치 바닷속에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팔을 휘휘 저으며 수영을 하는 시늉을 하다가 싱거워서 그만두었다. 수영할 줄도 모르면서 흉내는. 작년에 있었던 정전 사태로 올해는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렸다며 일찌감치 에너지절약에 열을 올리는 덕에 사무실에서도 에어컨을 마음껏 틀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를 절약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나 이 무더위에 에어컨을 틀지 않고(물론 많이 더울 땐 잠시 틀기도 한다) 근무를 한다는 건 정말 고역이다. 엉덩이에 땀이 차서 전기방석에 앉은 듯 화끈거리고, 머리는 돌처럼 무거워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직은 칠월인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팔월엔 어쩌려고 그러는지. 아, 이런 말은 뙤약볕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겐 한갓 사치스러운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겠지. 그래,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니, 더위와 친해지려고 노력해야겠다. 얼음을 한 다섯 개쯤 물고서. 아직까지는 그래도 견딜만은 하니 다행이다. 어쨌거나 엄살은 내 오랜 지병과도 같은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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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사무실에 들어온 화초 하나를 내 방에 갖다 놓았다. 누군가에게 그 식물의 이름을 물었더니 산세베리아라고 했다. 어떻게 길러야 할지 몰라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는데 내 방에 있는 것과 사진 속 산세베리아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일반적으로 많이 통용되는 산세베리아는 잎이 선인장처럼 길쭉하고 호피무늬처럼 생겼는데 반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손바닥을 펼치고 있는 듯, 잎이 넓고 줄기는 가늘고 길다. 짙은 녹색에 윤기가 흐르며, 분홍색 잎에는 아이의 새끼 손가락만한 꽃술 같은 것이 달려있다. 어떻게 보면 조화같기도 한데, 전체적인 모양새가 무척이나 고상하고 품위가 있다. 혹시나 같은 이름이지만 종류가 다른 것인가 싶어서 이미지를 계속 검색해봐도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산세베리아인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지만, 그냥 되는대로 키우기로 했다. 나중에 꽃집에 가게 된다면 한 번 물어봐야지. 방 안에 식물이 있어서 그런가, 왠지모를 생기가 도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귀차니즘과 게으름의 화신인 내가 식물을 기른다니 식물에게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어쨌든 같이 살게 되었으니 내가 좀 더 신경을 쓰면 될 것이다. 한 2년 가까이 된 황금죽은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나와 잘 살고 있으니,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