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마치 내가 노래의 한 부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월의숲 2012. 9. 26. 21:31

어쩐 일인지 성시경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그래서 이젠 긴팔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 왔기 때문인가? 이소라는 물론이고, 이상은과 디어클라우드, 성시경의 노래가 귀에 감긴다. 성시경은 한마디로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목소리다. 부드러운 마쉬멜로우 같기도 하고. '거리에서',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바람, 그대', '더 아름다워져' 같은 노래들은 제목만 놓고 보면 그냥 가을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찾아 듣게 되는건지도. 오늘은 10월달에 있을 이상은 콘서트를 예매했다. 선곡표를 보니 벌써부터 설렌다. 그래, 내 마음에 드는 음악에 몸과 마음을 푹 담근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 마치 내가 그 노래의 한 부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을은 거리를 걷게하고, 과거를 회상하게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모든 소리들이 가까워지고, 하늘은 더 넓어지고 깊어지며, 들판은 누렇게 변해간다. 자꾸만 음악을 찾게 되는 건 가을탓인가? 어제는 클래식 공연을 다녀왔다. 현악 5중주, 6중주였는데 무려 브람스와 슈베르트였다. 나는 처음 듣는 곡이었고, 생각보다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되는 연주였지만 그리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연주자들의 열정적인 연주에 심장이 몇 번 요동치는 경험을 했다. 연주의 질을 따질 재간은 없지만 멋진 연주였던 것 같다. 연주가 끝나고 박수를 치는데 어떤 만족감이 나를 휩싸더니 갑자기 미소가 지어졌다. 그 웃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멋진 연주에 대한 감동 때문인지, 연주에 집중하는 연주자들의 모습 때문인지, 긴 연주를 다 들었다는데 대한 스스로의 만족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나오니 밤이 되어 있었다. 나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집까지 걸어왔다. 걸어오면서 대학교 때 누군가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음악이 네 몸 여기저기 붙어 있구나!'

 

나는 그때 학생회관에서 운영하는 음악감상실에 있다가 나온 참이었다. 처음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재차 묻고 나서야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애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는 또렷이 기억이 난다. 경쾌하고 맑은 소리. 아무런 사연도 없고, 감정도 없었던 누군가의 말이 불쑥, 그 시간에 그 거리에서 생각이 났던 건 왜일까. 일상의 어떤 순간이 과거에 경험했던 사소한 기억들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되는 것인가?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어떤 순간' 이. 이번 가을은 그렇게 사소한 것,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생각나는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아프고 슬펐던 기억들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