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

시월의숲 2012. 9. 19. 00:26

오후에 출장이 있어 나왔다가 퇴근시간보다 일찍 집에 들어왔다. 출장지에서 만난 동료가 내게 일찍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뭐하냐고 물었다. 나는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허경환 흉내를 내며 '궁금해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 하는 시덥잖은 말을 던지며 웃었다. 그도 따라 웃었지만 그건 그가 개그콘서트를 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었다. 그의 웃음은 '저게 뭐하는 거지?' 하는, 어색함을 무마하는 듯한, 결코 공감할 수 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던 것이다. 나는 개그콘서트도 안보냐고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나도 예전에 사람들이 많이 따라하던 유행어를 나혼자 알아듣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건 마치 알 수 없는 나라의 언어를 듣는 것 만큼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유머란 때와 장소, 시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서로가 알고 있느냐의 여부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 공유, 공감, 이해 뭐 그런 것들. 아무튼 일찍 마치고 집에 가면 무엇을 하느냐는 따분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그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뭐 이런 뻔한 대답보다는 수십배는 재밌는 대답이지 않은가? 대답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따분한 질문에는 그냥 웃어넘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찍 집에 왔더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그냥 쉬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모처럼 시간이 생겼는데 아무것도 안하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도 화창한데! 그래서 친구를 불러내 영화를 보러 갔다. 요즘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인데, 이건 그 친구가 보고싶어 하지 않아서 그냥 <광해 - 왕이 된 남자>를 보았다. <피에타>는 나혼자서라도 볼 생각을 하고서. 평일인데도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데도 불구하고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어서인지 영화관 안은 생각보다 더웠다. 그래서 영화가 재미있었는데도 더위 때문에 그 재미가 조금 반감되는 듯 느껴졌다. 그건 영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영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영화는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늘어지지 않고 재미가 있었으며,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병헌의 왕 연기는 괜찮았지만 초반의 광대연기는 좀 어색하기도 했다. 하긴 <왕의 남자>의 감우성이나 이준기의 광대 연기도 썩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 정도는 괜찮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면에서는 광해군의 치적들이 그의 것이 아니라 그와 닮은 광대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뭐 그렇게 상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개연성이 좀 부족하다고 해야하나? 아무렴 어떠랴, 잠시 즐거웠으면 그것으로 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