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시월의숲 2012. 10. 3. 18:19

1.

이번 추석은 비교적 여유롭게 지나갔다. 차례를 지내러 큰집에 내려가지 않은 탓이 클 것이다. 나와 내 아버지는 약간의 음식을 해서 할아버지 성묘를 다녀왔다. 할머니 무덤 옆에 나란히 누워 계신 할아버지의 무덤엔 잔디가 잘 자라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이름을 불렀던 할아버지였는데,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은듯 얼떨떨한 기분으로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술을 따르고 절을 했다. 같이 간 고모는 할머니의 얼굴이 이젠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나 나를 감싸준 할머니와 할아버지. 죽은 자들의 무덤 앞에 서면 나는 늘 내 남은 생을 생각하게 된다. 유한한 삶. 그들이 내게 남긴 추억들, 긴 시간이라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고,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기억 속에서 언제나 그들은 살아있다.

 

 

2.

추석 연휴는 길지 않았지만 징검다리 연휴 덕에 무척이나 긴 휴가를 받은 기분이 든다. 나는 그저께 내 일터가 있는 고장으로 돌아왔다. 어제와 오늘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그래서 당연히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두 번째 권을 다 읽고 세 번째 권을 읽기 시작했다. 무섭도록 악의적이지만 읽다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이다. 이이체의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는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눈에 띄는 대로 시집을 펼치고 읽기는 하지만 진도가 잘 나가지는 않는다. 너무 관념적이어서 그런가? 하지만 몇몇 시들은 기형도를 생각나게 하고, 그래서 흥미가 생긴다. 나보다도 훨씬 어린 시인의 시집이다. 부럽고 질투가 살짝 나긴 한다. 하지만 무척 재능이 있는 시인인 것 같다. 친구 집 책장에 꽂혀 있던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을 빌려왔다.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인데, 영화의 카피를 보고 무척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끝내고 읽을 것이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가 클래식 음반 몇 개와 소설 몇 권을 주문해버렸다. 원래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이 담긴 음반을 살 생각이었으나 딱 그렇게만 되지 않는 것이 인터넷 쇼핑 아니던가? 암튼 조금은 우발적으로 질러버렸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징검다리 연휴를 다 보냈다. 내일부터 출근이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늘이 벌써 한 주의 중간인 수요일인 것이다!

 

3.

추석 연휴 기간동안 가족들과 안동 탈춤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주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마땅히 볼 공연이 없어서 그냥 야시장을 구경했다. 매년 똑같은 것들이라서 별 감흥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지나다녔다. 감자 한 개를 회오리처럼 잘라서 튀긴 것을 삼천 원에 사먹고, 조카에게 사천 원짜리 뽀로로 풍선을 사 주었다. 점심으로는 국밥과, 비빔밥, 파전과 막걸리를 먹었다. 통돼지 바베큐가 긴 막대에 꽂혀 빙빙 도는 모습을 어느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었고, 안동간고등어는 쉴 새 없이 구워지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어이가 없었지만 축제라는 명목하에 어느정도 용서가 되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공연에 관심이 없고 막걸리와 파전에 더 관심이 있었다. 축제를 즐기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니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탈춤페스티벌에 와서 탈춤 공연 하나 못보고 간다면 이 곳에 온 의미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햇살은 아직 뜨거웠으나 그늘에 있으면 시원했다. 날씨는 무척 맑았고 사람들은 모두 들뜨고 밝아 보였다. 우리 가족은 봉정사 아래에 있는 '만휴'라는 찻집에서 산수유차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마셔본 산수유차는 무척 달았다.

 

4.

그래서 결국 시월이다. 이천십이년의 시월. 인터넷의 한 사이트에서 '시월의숲'이라는 닉네임을 보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아닌데 나인 것만 같은 기분. 누군가 나를 아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올린 글들을 검색해서 몇 개 읽어봤는데, 당연하게도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앞에 두고 나는 조금 실망했던가? 시월은 내가 태어난 달이고, 그래서 나는 시월의 기운을 품고 있다, 고 생각한다. 그 기운은 아마도 숲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시월의 숲이 가진 기운, 그러니까 나뭇잎을 통과해 부는 바람과 낙엽 밟는 소리 같은 것들. 그것이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시월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태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기형도의 '10월'이란 시를 다시 읽는다.

 

 

……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

 

-기형도 '10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