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누군가 내게 말했다

시월의숲 2013. 1. 28. 21:46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게 네 한계야.'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가슴이 요동쳤다. 아마도 그 감정은 억울함과 창피함으로 뒤범벅된 화였을 것이다. 나는 태연을 가장하며 그의 말을 곰곰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가 남긴 덧글과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읽어 보았다. 그는 내가 쓴 글의 특정 문장을 길게 인용하며 정확히는 '지망생들의 한계'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내 방에서 요동치는 가슴과, 화끈거리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다 이해한다는 식의, 나는 너그러우며 그런 값싸고 진부한 도발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약간의 오만함을 가지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너는 나를 다 알지 못한다는 그저그런 변명을, 유치한 울부짖음과 어색한 자만과 화를 억누르는 듯한 태도가 눈에 선하게 보이는 어조로.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얼굴이 화끈거리기만 하는 말들을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쓰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화가 조금씩 누그러들고 내가 쓴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차츰 뭔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 그것이 내 한계였던 거야! 하지만 그런 한계로 인해 나는 나를 더 들여다보게 되었고, 쓸데없는 감상성과 허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계를 벗어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는 것이 조금은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조차 아직 멀었다며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는 한쪽 입꼬리를 한껏 올린 채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한계를 안다는 것, 그것을 아무런 감정의 가감없이 바라봐야만 한다는 것.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걸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런 말을 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는 고맙다. 내게 창피함이 뭔지 알게 해줘서. 내 한계를 알게 해줘서. 창피함과 모욕감이 모자라다면 달게 받을 것이다. 내게 한계를 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