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슬픔이라는 물감에 시간이라는 물을

시월의숲 2013. 2. 7. 21:59

입춘이 코앞이라고 쓴 게 엊그제 같은데, 입춘이 지나고 나흘째가 되었다. 입춘이라는 말에 스며있던 봄의 기운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늘은 무척이나 추웠고, 내일은 더욱 추워질 거라고 텔레비전 속 기상캐스터가 말했다. 내일 모레가 설 연휴인데, 많은 사람들의 춥다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이번 설엔 울산에 내려가지 않고, 연휴 끝나고 이틀 째 되는 날 내려가기로 했다. 그날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일 년째 되는 날이다. 일 년이란 시간은 누군가를 잊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그렇지 않을까. 내가 잊은 것은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인가 죽음과 상실에 관한 슬픔의 감정인가. 모든 것들이 시간이라는 파도에 부식되듯 그렇게 지나가는가 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고향집에서 자다가 문득 할아버지가 아직도 살아 계신 줄로만 알고 잠에서 깨었던 기억은 이제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빗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니, 기억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기억이란 내 의지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찍힌 상처로, 넘어진 흉터로, 우연히 심장에 각인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잔잔한 일상 속에서 불현듯 떠오른 어떤 기억을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대부분의 기억들이 망각의 바다로 빠져들기 때문에, 시간의 파도에 부식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2월은 꼭 한 해를 살아내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처럼 느껴진다. 어수선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약간은 어색함마저 감돌며, 얼마나 서성거려야 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낯빛의 사람처럼. 하지만 작년의 2월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또 올해의 2월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