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추위가 겨울의 일이라면

시월의숲 2013. 1. 18. 20:55

또다시 감기가 찾아왔다. 이번엔 아예 처음부터 확실히 잡기 위해 아프고 난 다음날 바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왔다. 이번 감기는 유난히 몸살이 심하다. 약을 먹은지 삼 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목이 따갑고 코가 막힌다. 지어 온 약을 다 먹고 나니 어쩐지 다시 아플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감기란 정말 약을 먹어도 일주일, 안 먹어도 일주일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직 일주일이 되지는 않았으니 며칠 더 고생해야 한다. 추위가 어느정도 누그러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거리엔 군데군데 지난 눈과 눈이 밟혀서 생긴 얼음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골목길은 아직도 빙판인 곳이 많아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은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용케 이 겨울을 잘 지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감기는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추위와 눈의 여파로 여유로운 산책은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여름엔 더위로 인해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았는데, 겨울엔 추위 때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특히나 춥고 눈이 와서 길이 얼어붙었을 때는 더하다. 오로지 미끄러지지 않고 걷기 위해서 온 몸과 마음을 발 끝에 집중한다. 잡생각이 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여름보다는 겨울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하면서 걸을 수 있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는, 공기와 바람을 느끼며, 낙엽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걸을 수 있는 가을이 제일 좋긴 하다. 가을은 이미 지나왔고, 지금은 겨울의 한 가운데에 있다. 다가올 봄은 이 겨울의 추위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환하고 반가운 손님처럼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 겨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겠지. 감기는 떨쳐내고, 다시 한번 더 이 겨울에 몸을 담그자. 겨울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