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이월의 첫날, 봄비처럼 겨울비 내리고

시월의숲 2013. 2. 1. 21:14

봄비처럼 겨울비가 내린다. 이제 겨울이라고 말하기도 어쩐지 망설여진다(벌써!). 멍하니 달력을 바라보다가 아직 1월인 것을 깨닫고는 달력을 한 장 넘긴다. 그래, 2월이 되었다. 이천십삼 년의 이월. 이월의 첫날, 봄비처럼 겨울비 내린다, 라고 쓰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진다. 겨울에 내리는 비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시에 마음이 간다. 어쩌면 계속 소설만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놓고 읽지 않았던 시집을 꺼내 책상 한 켠에 꽂아두고 눈으로 책등을 쓸어본다. 이이체의 <죽은 눈을 위한 송가>는 관념적인 말들의 조합 때문에 읽다가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는데, 조용미의 <기억의 행성>은 그렇지 않았다. 시인이 하려고 하는 말이 쉬웠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편하게 다가왔다고 해야할까. 풍경을 해석하지만 그저 경탄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시선과 사유, 뭐 그런 것들이 조용미의 시에는 들어있었다. 끈기와 집중력이 없어 이야기가 있는 소설보다 이미지와 묘사로 이루어진 시에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곤 했는데 조용미의 시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시집에 담긴 시인의 세세한 숨결을 다 느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나는 아직 너무나도 좁고 얕은 것이다. 문득 시적인 인간과 소설적인 인간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진다. 명확하게 그 둘을 나눌 수는 없겠지만, 나는 시적인 인간에 가까운지, 소설적인 인간에 가까운지도. 요즘 내 화두는 그것이다.

 

이 비는 겨울을 마감하는 비일까, 봄을 준비하는 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