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네가 없이 일 년을

시월의숲 2013. 2. 15. 22:38

요즘엔 꽤 자주 아픈 것 같다. 불과 한 달 전에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지어 먹었는데, 오늘 또 병원에 갔다. 어제 울산에 다녀온 뒤로 몸이 좀 이상하더니 결국 밤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불을 뒤집어 썼는데도 몸이 덜덜 떨리고, 온 몸이 얻어 맞은 것처럼 아프고, 속이 메슥거려서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잠에서 깨었다. 출근을 해도 일을 못 할 것 같아서 아침에 직장에 전화를 걸어 오늘은 못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는 것도 힘들어서 어떻하나 그러고 있는데, 직장 동료로부터 오늘까지 보고를 해야하는게 있으니 오후에 좀 나올 수 없느냐는 문자가 왔다. 좀 짜증이 났으나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병원에도 갈 겸 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씻고 집을 나왔다. 날씨는 맑아서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햇빛은 눈이 부셨다. 아, 이런 날 병원에 가야하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파도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 그것도 급격하게. 병원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약간의 소외감을 느끼며 간호사가 내 이름을 빨리 호명하기를 기다렸다. 지금까지 세 번 만난 의사에게 내가 너무 자주 병원에 오는 거 아니냐고 자조섞인 혼잣말을 던졌는데, 의사는 웃으며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와야죠, 라고 말했다. 그렇다. 아프면 병원에 오는 것이다. 하지만 내 나이에, 그것도 흔한 감기몸살로 병원에 자주 다니는 건 좀 창피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으면 몸이 튼튼해야 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주사를 한 대 맞고 약을 지었다. 약을 먹으니 나를 괴롭히던 증상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너무도 당연한 그 일이 나는 너무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오늘 주사는 지난 번에 맞은 것과는 좀 다른 것인지, 반나절 동안 엉덩이가 욱신거려서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첫 제사를 울산에서 지내고 와서 이렇게 아프니, 어쩐지 예사로운 몸살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벌써 일 년이나 지난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일 년을 나는 살아내었다. 아무렇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