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들의 향기에 흠뻑 취할 때

시월의숲 2013. 5. 23. 20:01

지금은 장미와 아카시아의 천국이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진하고 달착지근한 아카시아의 향기가 들어온다. 그저께 출장차 구미로 가는 차 안에서 옆에 탄 동료에게 말했다. 지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저 하얀 것들이 다 아카시아인가요? 그래요, 온통 아카시아로군요! 온 산이 하얀 아카시아꽃으로 만개하였고 수줍었던 연두의 나뭇잎들은 점차 성숙한 녹색으로 변모하는 중이었다. 조금은 더운 듯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고 나는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그 바람을 만졌다. 아직은 충분히 견딜만한, 아니 즐길만한 날씨. 즐길만한 햇살과 온도. 계절이 내게 자꾸 말을 걸어오는데,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우물거리기만 한다. 이러다 한 계절은 가고 다른 계절이 찾아오겠지. 계절은 승차시간에 늦은 승객을 기다려주지 않는 버스와도 같으니까. 한 번 놓치면 내년의 여름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내년의 여름은 지금, 여기에 당도해 있는 여름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뜨거운 여름으로 넘어가기 직전 특유의 열기 속에 내가 있다. 장미도, 아카시아도, 그들의 향기도. 좀 우물거리면 어때? 꼭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그래, 지금은 온 몸을 다해 그들의 향기에 흠뻑 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