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아버지의 팔

시월의숲 2013. 6. 6. 23:52

1.

컴퓨터가 이상하다. 인터넷을 하다가 갑자기 창이 꺼지거나 아예 컴퓨터 자체가 꺼지는 경우도 있고, 농협 인터넷 뱅킹 사이트에 들어가니 보안강화라고 해서 개인정보와 보안카드 번호를 입력하라는 창까지 뜬다. 말로만 듣던 피싱사이트였던 것이다. 한 5년 쯤 사용했으니 이제 컴퓨터를 교체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인지 자꾸 말썽이 생긴다. 포맷을 해야할까? 암튼 불완전한 컴퓨터로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쓰고 있자니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든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불꽃을 부여잡고 있는 느낌이다. 컴퓨터에도 수명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뼈가 시리다. 일단 포맷을 해보고 안되면 교체를 해야겠지. 내가 돈을 벌어 산 첫 번째 컴퓨터라 그런지 더 애착이 간다. 그리 좋은 컴퓨터는 아니었을지라도.

 

 

2.

직장에 연가를 내고 아버지와 함께 대구 병원에 며칠 다녔다. 무려 40여년 전에 다친 아버지의 팔꿈치가 최근들어 저려오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 어렸을 때 왼쪽 팔꿈치를 다쳤는데, 병원에 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방치해 놓아서 뼈가 부서진 채로 생활해 왔었다. 나는 최근까지도 아버지의 다친 팔에 대해서 무관심하기만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팔이 아프다는 말을 그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최근에 팔에 힘이 빠지고 저린데다 아프다고까지 했다. 차가운 눈매를 가진 대학병원의 교수는 무척이나 사무적인 태도와 목소리로 자신의 소견을 말했다. '지금은 왼쪽 팔꿈치에 관절이 없는 상태다. 관절이 없는 상태로 오랫동안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이빨이 없이 잇몸으로 생활을 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인공관절을 넣을 수는 있겠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관절없이 생활해 왔기 때문에 오히려 인공관절이 왼팔에 불편함과 통증을 가중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신경이 눌리는 부분을 다른 쪽으로 옮기는 수술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그런 말들을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말했다. 우리는 교수의 말대로 현재 팔이 저린 증상을 완화하는 수술을 하기로 했는데, 그러자면 문제가 있었다. 아버지는 팔뿐만 아니라 당뇨병에 고혈압, 약간의 협심증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수의 조언대로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검사를 더 하기로 했다. 그게 아니라면 다음 주 쯤에 수술을 할 수도 있었으나, 늦어도 다음 달에 가서야 수술 가능 여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약간의 조바심을 느꼈으나 마음을 다잡고 다음 검사를 위한 예약을 하고 병원비를 지불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냐는 말을 하는 아버지를 내가 쏘아보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봐야 나중에 후회가 없지 않겠느냐고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다. 검사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나중에라도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현재의 상태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있을까. 원래 그런 사람인 걸. 지금의 내가 아버지를 위해 이렇게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차가 없는 내가 대구까지 버스와 택시를 이용해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그건 40년 동안 관절이 없는 상태로 살아온 아버지의 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3.

아버지의 팔 때문에 대학병원이라는 곳에 처음 가봤다. 그곳엔 의사라 불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수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고, 무슨 과나 실 또한 많아서 나는 하마터면 길을 잃어버릴 뻔 하였다. 아니, 애시당초 길을 알지 못했으니 헤매고 다녔다는 게 맞는 말일게다. 예약을 하긴 했으나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다녀야 했고, 얼마간 기다려야 했다. 아버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검사하는 것 보다 기다리는 것이 더 힘든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면서 어쩔 수 없이 고통에 일그러진 사람들의 얼굴을 봐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고통 때문에 아예 눈을 감고 있거나,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게 초점을 잃은 눈동자와 걸음조차 걷기 힘들어 보이는 노인들을 지켜보는 것은 거의 고통에 가까웠다. 병원의 답답한 공기는 약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상에 가까울 그곳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곳으로 느껴져 어서빨리 이곳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찼다. 검사를 다 마치고 나오는 아버지를 재촉해 빨리 병원을 빠져나온 것은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아버지가 들리지 않게 짧은 한숨을 쉬었던가.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아픔없이 사람을 보는 일에 길들여진 사람들이고, 그것이 타인의 아픔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나처럼 타인의 아픔에 쓸데없이 동조하는 사람들은 절대 그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가진 타인과의 거리와 객관성, 망설임없는 판단력이 때론 무섭고, 때론 경이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