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오월에는 사랑의 서약을

시월의숲 2013. 5. 2. 21:05

어느덧 오월이 되었다.

몇 달 전에 친구로부터 오월에 결혼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그저 무심히 듣고 넘겼는데, 오월이 이렇게 빨리 올줄은 몰랐다. 친구의 결혼식도 그렇고, 오월도 아직은 먼 이야기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래도 오월은 온다. 모든 달이, 모든 계절이, 모든 탄생과 죽음이 그러하듯이 오월은 온다.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 엄연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친구는 내게 축가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거절을 했으나 친구의 거듭된 부탁에 마지못해 승낙하고 말았다. 승낙을 하고 보니 이게 만만한게 아니라는 생각이 비수처럼 들었다. 대학동기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아는 친구들이 결혼식에 올 것이고, 나는 그 친구들을 포함한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이다. 처음 친구가 부탁을 했을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뭐 그까짓거 하면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는데, 막상 실제로 내가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순간 내가 잠시 미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부르고 싶은 축가와 하객들 앞에서 축가를 부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어쩌면 잊을 수 없는, 재미있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이 모순적인 감정은 무엇인지. 나는 순간 혼란스러웠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 안에는 나를 깨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뻣뻣해지고, 손을 떨고, 얼굴이 굳어버리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가 나를 그리로 이끈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런 걸 일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모험이자, 일탈인 것이다. 그래도 남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 모험이자, 일탈이다(친구의 입장에서는 해가 되려나?). '신도림역 앞에서 미친척 춤을' 출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축복의 노래를 불러 줄 수는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꽤 의미있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여러가지 의미로 친구의 결혼식이 기다려진다. 나는 나를 멋지게 이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