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나의힘

붉은 장미꽃다발

시월의숲 2013. 6. 2. 14:55

 

 

붉은 장미꽃다발

 

 

 

 

네 꿈의 한복판

네 온몸의 피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눈을 뜰래

 

네 살갗 및 장미꽃다발

그 속에서 바짝 마른 눈알을 치켜뜰래

네 안의 그 여자가 너를 생각하면서

아픈 아코디언을 주름지게 할래

 

아코디언 주름 속마다 빨간 물고기들이 딸꾹질하게 할래

 

너무 위태로워 오히려 찬란한

빨간 피톨의 시간이 터지게 할래

 

네 꿈의 한복판

네 온몸의 숨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곳

그곳의 붉은 파도 자락을 놓지 않을래

 

내 밖의 네 안, 그곳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래

 

 

 

 

- 김혜순, 『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사, 2004.

 

 

*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를 읽고 있다. 전에도 한 번 말할 것 같은데, 평론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음을 신형철의 글을 통해 처음 알았다. 제법 두툼한 책이라서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용기를 내어 읽다보니 차츰 책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한 챕터만 남았다. 시를 많이 읽지 않는데, 책에 소개된 시인들과 시집에 관심이 생긴다. 위에 적어놓 김혜순의 시도 그렇다. 그는 김혜순의 시를 연애시라 규정하고 '불타는 사랑기계들의 연대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의 안내를 받아 김혜순의 시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유월이고, 내가 살고 있는 사택 입구의 덩쿨장미는 그 붉음이 절정에 달했다. 사랑에 빠진 누군가는 붉은 장미꽃다발을 받겠지만, 나는 장미를 덩쿨째 매일 선물받고 있다. 그 '붉은 파도 자락을 놓지 않'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순 없겠지. 불가능성을 위해 나는 김혜순의 시를 읽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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