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 김민정,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중에서 김민정 시인의 이 시집을 언제 샀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내가 이 시집을 경주의 황리단길에 있는 작은 책방에서 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인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느 시기에 나는 이 시집을 샀고, 핑크색의 이 시집은 내 책상 위에 몇 년인지도 모를 시간 동안 내내 놓여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나면 시 한 편씩 혹은 기분 내키면 몇 편씩을 읽고는 다시 덮어두기를 반복했다. 오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