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4시의희망

Michael nyman - the heart asks pleasure first (the piano, 1993)

시월의숲 2013. 6. 27. 00:27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피아노>의 삽입곡이다. 1993년. 나는 이 영화가 나온 연도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나와 같은 집에 살고 있었던 고모는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월간 잡지를 구독하고 있었는데(잡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거기 이 영화의 배경사진과 함께 소개글이 실려 있었다. 사진으로 실린 장소가 어디인지, 무슨 내용의 영화인지 전혀 모른 채 잡지 속 그림만 열심히 들여다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였던가, 이전이었던가? 고모는 그 영화의 비디오를 빌려와 혼자서만 보고는 반납해버렸다. 청소년관람불가였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내심 서운했다. 나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은채 고모에게 영화는 재미있었냐고 물었다. 그때 고모가 뭐라고 대답을 했던가? 혼란스럽다고?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내가 언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 영화를 타고 흐르던 음악이 언제 내 뇌리에 새겨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기억나지 않으므로. 기억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확실한 건 이 영화가 나온지 이십 년이나 지났다는 사실뿐. 나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고 놀랍기만 하다. 이십 년이란 시간이 나를 통과해서 흘러갔다는 사실이. 그렇게 무참한 시간의 흐름에도 내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다는 건, 이 영화가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어떤 영화는 보자마자 바로 잊어버리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이 나를 사로잡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무언가'가 이 영화에는 있다. 그 '무언가'에 음악 또한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음악 때문에 이 영화가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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