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4시의희망

브로큰 발렌타인 - 알루미늄

시월의숲 2013. 7. 5. 22:16

 

 

언젠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내 목소리를 녹음하여 들어본 적이 있다. 그건 끔찍하고도 괴이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내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낀다. 내 입을 통해서 듣는 내 목소리는 완전한 타인이 듣는 내 목소리와는 다르다. 그 괴리감과 이질감은 나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마치 영상에 찍힌 내 모습을 보고 나와는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듯이. 그건 내 안의 또다른 나인가? 그건 나만이 알고있다고 '믿은' 나라는 확고한 정체성에 흠집을 낸다. 내가 알고 있는 '나'가 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하나'의 목소리'이자 '하나'의 나 자신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진실은 그 '하나'가 결코 '한 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거기에 어떤 존재론적 사유의 단초가 있는 것이 아닐까. 브로큰 발렌타인의 노래를 들으니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이 난다. 보컬의 힘있는 목소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때로, 아니 습관적으로 목이 터질만큼 소리를 지르고픈 욕망에 휩싸인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에게, 혹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현듯 떠오르는 무언가에게, 그 무언가를 향해서, 온몸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