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한 때 아이였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시월의숲 2013. 9. 24. 22:02

니체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에서 생성을 말한다. 아이들이 가진 샘솟는 삶의 에너지, 모든 것을 놀이로 승화하는 능력은 과연 아이들만이 가진 특권이자 무기이다. 아무리 젊고 혈기 왕성한 사람이라도 아이들과 단 몇 시간만 보내고나면 아마도 급격한 피로를 느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에너지가 아이들이 가진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놀이에 어른이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놀이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놀이를 수십 번 되풀이하는 아이들을 보다보면,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것은 거의 혁명에 가깝다. 내가 보기에, 아이는 아이이고 어른은 어른이다. 아이와 어른은 전혀 다른 인격체, 전혀 다른 존재로서 그들이 원래부터 하나의 인간이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5년 전에도 이와 똑같은 생각을 했고, 그것을 기록했었다. 세상이 변하지 않은 것인가, 내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생각은 점차 강해진다. 거의 확신에 가까워진다. 어느 순간 아이는 죽고, 어른은 태어난다. 어느 순간 우리는 내 안의 아이를 죽이고 어른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아이였다는 사실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그것은 진화인가 퇴보인가? 한 때 아이였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니체식으로 생각하자면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 속에 아이가 들어있는 상태가 아니던가?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생의 에너지로 충만한 삶을 '지금' '우리'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무척이나 당연하고도 쉬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한 때 아이였던 나는 지금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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