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고독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

시월의숲 2013. 10. 3. 17:09

'고독사'라고 했다.

 

얼마전 부산의 두 평 남짓한 주택에서 혼자 살던 한 할머니가 죽은 지 5년 만에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5년이란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 시간동안 부패되어 백골이 된 한 인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집주인은 몇 년동안 집세가 밀려도 보증금이 있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거주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또한 기초수급자도 아니어서 구청의 관리대상도 아니었다. 할머니는 옷을 몇 겹이나 껴 입고, 장갑을 낀채 죽어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추워서 죽은 것 같다고. 나는 그 기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모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죽음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나는 종종 내가 죽으면 얼마만에 발견될 것인가 생각해보곤 한다. 운이 좋으면 일찍 발견되겠지만, 그래도 5년까지 방치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확실히 5년이란 세월동안 홀로 살이 썩어가고 하얀 뼈만 남게 되는건 너무나도 고독한 일이다. 죽음보다 더 지독한! 그래서 고독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인가. 문득 한 인간이 죽기도 전에 잊혀지는 것과, 죽고 난 이후에 잊히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궁금하다.

 

고독사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내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이 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할아버지의 첫 번째 제사 즈음에 당신없이 일 년을 아무렇지 않게 보냈다고 썼다. 갈수록 할아버지를 기억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아진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어렵고도 힘든 일이니까.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몇 달 뒤 고향 집에서 자던 날, 나는 할아버지에게 아침밥을 차려드리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며 잠에서 깨었다. 그것은 기억의 장난, 몸에 벤 습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잠이 많아 일요일에는 늘 늦잠을 잤고, 할아버지는 그런 내가 못마땅해 큰 소리로 호통을 치셨다. 할아버지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지만 누구 하나 진정으로 가슴에 품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은 자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손주였지만, 문제만 일으키는 자식이 돌보지 못하는 손주를 돌봐야만 하는 처지의 할아버지에게 나는 애물단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묵묵히 밥을 안치고, 설거지를 하고, 술을 사다 나르고, 욕지거리와 화를 감내했다. 나는 점차 침울해졌고, 속을 잘 드러내지 않게 되었으며, 혼자서 생활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술을 마셔야만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술의 힘을 빌어 하는 말은 늘 폭력적이고,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할아버지만의 대화방식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엄연한 대화의 시도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코 가족들과 소통할 수 없는, 할아버지만의 방식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할아버지의 고독을 누가, 어떻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할아버지의 죽음은 결코 세간에서 말하는 고독사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것 또한 고독사였다고 생각한다. 이해받지 못하고, 고독 속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모든 이들의 죽음은 다 고독사이다. 그리고 고독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 죽음은 늘 고독하다.

 

우리가 부산 할머니의 죽음에 놀란다면 그건 자신의 미래를 미리 들여다 본데서 오는 놀라움이 아닐까? 그것이 극적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 어떤 이도 죽음에 문턱에 다다르면 고독과의 대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반드시 홀로 가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대신 할 수 없다. 사람은 저마다의 고독을 가지고 있고, 그것의 색채와 모양과 성질이 다 다르므로, 타인, 심지어 가족조차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고독은 불가피한 것이다. 죽음은 고독의 가장 극대화된 선언이자 표현이다. 우리는 모두 고독하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화창한 날 죽음에 대해서, 고독에 대해서 생각한다는게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