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상어의 이빨과 개복치의 도도함, 그리고 거북의 눈에 대하여

시월의숲 2013. 10. 6. 18:04

 

 

부산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다.

가기 전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기대보다는 좀 실망이었다. 단양에 있는 다누리아쿠아리움에 다녀와서인지, 그에 비해서 규모가 그리 크지도, 전시생물이 많아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단양은 민물고기 생태관이고, 부산은 바다생물 생태관이라는 것. 아쿠아리움엔 단체로 관람을 온 유치원생들로 인해 시끌벅적했다. 기기묘묘한 바다속 생물들이 가득했는데, 그중에서 상어와 거북, 그리고 개복치가 기억에 남는다. 메인 수족관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상어의 억세고 날카로운 이빨이 거기 있었다. 내가 찾아서 본 것이 아니라 마치 상어가 나에게 다가와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꽉 다문 입 사이로 비어져 나온 가시 같은 이빨들. 상어의 이빨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 이빨로 인해 상어의 얼굴은 늘 화가 나고 사나워 보였다. 때마침 아쿠아리스트가 상어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수족관 안에 들어가 있었다. 두 명의 아쿠아리스트들이 상어에게 먹이를 주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가오리가 튀어나와 먹이를 가로챘다. 상어만큼 커다란 가오리였다. 가오리는 인간들이 보고 있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하고 하얀 배를 드러낸 채 순식간에 먹이를 먹어 치웠다. 상어의 위협적인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가오리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어는 가오리의 난입으로 아쿠아리스트들에게서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상어에게 먹이를 줄 때는 많이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해설사가 말했다. 상어는 많이 움직이는 생물을 보면 수달인 줄 알고 물어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물 속이라 어쩔 수 없어서인지, 아쿠아리스트들은 천천히 움직였고, 그래서 마치 영화의 슬로우모션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이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떠들썩하게 상어에게 먹이를 주던 수족관의 맞은편 한 귀퉁이에는 주위를 어둡게 해놓은 수족관이 있었다. 화려하게 불을 밝힌 번화한 거리에서 갑자기 불이 꺼진 가게를 만난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개복치가 있었. 처음엔 그냥 비어 있는 수족관인 줄 알았다. 조금 더 다가가 고개를 빼고 잠시 기다리니 어두운 수족관 저 안쪽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띤 채 유유히 헤엄치는 개복치가 보였다. 마치 크고 납작한 바위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개복치에 대해 쓴 어떤 블로거의 글이 생각났다. 개복치를 무척이나 철학적인 생물로 규정한 꽤 매력적인 글이었다. 한번에 2억 5천마리의 개복치가 태어나지만, 태어나자마자 다른 생물들의 밥이 되어 그야말로 대학살을 당하고 살아남는 것은 한 두 마리 정도라는 개복치.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개복치는 어떤 생물의 위협도 받지 않고 유유히 남은 생을 살다 간다고. 빛을 싫어하고 예민한 성격이라 인공적으로 키우기가 무척 어렵다고 하는 개복치를 아쿠아리움에서는 용케 살려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박민규의 <몰라몰라, 개복치라니>라는 단편과 익명의 블로거가 쓴 개복치에 대한 글을 읽고, 실제로 개복치를 보니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너를 만났구나, 하는 느낌. 그 블로거의 글에서처럼 개복치의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꽤 사색적인 생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바위에 알처럼 박혀있는 개복치의 두리번거리는 눈이 생각난다. 플래시는 터트리면 안된다는 경고문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건, 바로 거북이다. 거북이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자의 눈을 닮았다. 나는 거북의 수족관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그건 바로 거북의 눈 때문이었다. 그 눈은 누군가를 오래 기다려본 사람의 눈빛처럼 보이기도 했다. 거북은 아쿠아리움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을 구경이라도 하듯, 통유리 앞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그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도 움직이지 않아서 실제로 살아 있는 생물이 맞기나 한가 의심이 들어 손가락을 거북이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거북은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가 이내 다시 뜨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내가 우습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나의 의중을 꿰뚫어 보는듯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거북의 눈을 한참 바라본 뒤 걸음을 옮겼다. 거북 또한 개복치처럼 사색적인 생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자신이 원래 있었던 곳을 생각하는 것일까? 자신이 비롯되었던 곳, 자신의 역사가 있는 곳, 좁은 수족관이 아닌, 파도와 바람과 바닷물의 흐름이 있는 곳, 인간들이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곳,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그런 곳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은 분명 인간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자신들을 좁은 수족관에 가두고 한갖 구경거리로 만든 오만한 인간들에 대해. 하지만 인간에 대한 분노도, 연민도 품지 않고 그저 인간이란 어떤 생물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에 빠져 있는건지도 모른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거북의 눈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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