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은밀한 생을 위한 독서

시월의숲 2013. 10. 13. 18:04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을 읽고 있다. 저번에 읽었던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은 약간 지루한 면이 있었지만,  <은밀한 생>은 지루하다기보다는 다소 난해한 면이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듯이 읽고 있긴 한데, 그것조차 시원찮다. 장편소설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철학책 혹은 심리학에 관한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어떤 것. 이것은 한 인간이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힌 채 쓴 독백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로지 그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인. 책을 읽으면서 때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두 페이지 정도 읽으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서 책장을 덮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다시 책을 집어들고 그다음 문장을 읽는다. 앞서 읽었던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도 그냥 읽는다. 그렇게 천천히 읽어나간다.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가? 수시로 떠오르는 의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한 문장씩 읽어나간다. 왜 그렇게라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나는 의아함을 느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소설을 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읽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희미하게나마 감지되는 어떤 '느낌'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놓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 '느낌'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매혹'이란 단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인가? 혹은 사랑?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읽는다 하더라도 이 당혹스러움은 매번 되풀이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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