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아름다운 것들

시월의숲 2013. 10. 1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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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출퇴근 길에 보이는 나무들은 단풍이 들기도 전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단풍지도라는 것을 보았다. 비슷한 시기에 단풍이 드는 산을 연결하여 대략적인 일자를 표시한 지도였다. 축제를 구경하러 다니던 사람들은 이제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길을 나설 것이다. 신형철은 몰락의 에티카를 이야기하지만, 단풍은 몰락의 미학을 말한다. 몰락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단풍은 몸소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 몰락을 보기 위해 불편과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꽃이 피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 같지만, 떨어지기 직전에 타오른다는 면에서 개화(開花)와 단풍은 비슷하다. 아름다운 것들은 다들 얼마간 닮은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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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이 어느새 누렇게 변했다. 첫 서리가 내리면 추수를 한다고 했던가?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의 심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벼'의 심정은? 결국, 죽기 위해, 죽어서 인간에게 이용당하기 위해 사육되고 길러지는 모든 동식물의 심정을 나는 알 수 없다. 그들의 심정을 일일이 헤아리는 일은 고통스럽다기보다 불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나는 이미 수많은 동식물의 죽음에 의해서 형성되었고,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그들의 죽음을 고통스럽다 느끼는 것조차 우리에겐 위선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죽어간 모든 것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는 타자의 고통과 마음을 이해하면서 열심히 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빚을 갚는 완벽하고도 유일한 길은 '죽음'뿐이다. 오해하면 안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재촉하지 않아도, 안달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죽는다. 죽음이 우리에게 축복일 수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필요한 건 '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살다가 죽는 것, 그것뿐이다. 저 붉디붉은 단풍과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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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름다운 것들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