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담양 죽녹원에서

시월의숲 2013. 10. 27. 16:30

 

 

 

 

 

빛은 그늘이 있어야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알겠다.

담양 죽녹원에서 대나무에 걸린 햇살을 보았다. 아직 그곳은 가을이 아니었다. 아니, 가을이 없는 것 같았다. 대나무의 푸른빛이 계절을 지워버렸다. 대숲길은 고요했고,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침묵이 흘러넘쳤다. 내 몸과 마음도 푸르게 물드는 것 같았다. 푸른 침묵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대숲을 통과한 서늘한 바람이 내 목덜미를 스쳐갔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것은 대나무의 숨결이었을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나무 이파리에 부서진 햇살의 조각들이 걸려있었다.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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