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밖에 없어서 미안해

시월의숲 2013. 10. 24. 19:52

그는 오전에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그는 잘 일어나지지 않는 몸을 일으켜 출근을 했고, 사무실에서 차를 한 잔 마셨으며, 약간의 업무를 처리했다. 그는 동생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오전이긴 하지만 좀 이른 시간에 전화를 한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가 '여보세요'라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동생은 '축하한다'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그는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약간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래, 고맙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주위를 조심스레 의식하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궁금해할 사람도 없고, 사무실의 누군가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지만 어쩐지 그는 자신의 생일을 굳이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휴대전화 너머로 동생은 미역국은 먹었느냐고 물었고, 그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생일을 챙기지 않게 되었고, 그러는 편이 마음이 더 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가 고맙다는 말에 이어 '너밖에 없다.'라고 말했을 때, 동생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물에 잠긴 듯한 목소리로 '나밖에 없어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는 왜 자신의 생일에 동생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늘 혼자였고, 그것이 죽을 만큼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과거 자신의 처지에 비해 훨씬 나아진 생활에 만족하였으며, 외로움이나 고독은 오래된 친구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의 그런 마음과는 달리 동생은 늘 자신의 피붙이가 안쓰러웠다. 곁을 두지 않는 성격을 답답하다 느꼈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였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그의 생일에 전화를 걸어 축하해 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그 말, '너밖에 없다'라는 말이 동생으로 하여금 그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할 줄은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늘 그런 식이었다.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이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알 수 없는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정작 그에게는 너무나도 사소하여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그런 일들이. 동생과 통화를 하고 난 후 다른 식구들에게서도 전화를 몇 통 받았다. 모두 동생이 한 일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동생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나밖에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리라. 생각보다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자기 앞의 생>의 '모모'처럼 그렇게 나는 씩씩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