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시월의 마지막 날

시월의숲 2013. 10. 31. 19:29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말을 누군가 했고, 나는 반사적으로 달력을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떡을 돌리면서 시월의 마지막 날임을 강조했다(물론 그 떡은 시월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돌린 것은 아니었으리라). 나는 시월의 마지막 날이 무슨 특별한 날이라도 되는지 궁금하여 옆에 있던 동료에게 물었다. 그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노래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그런 노래가 있는지, 있으면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시월의 마지막 밤'은 노래제목이 아니라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호들갑스럽게 말했던 것이 실은 '잊혀진 계절'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노랫말 때문에 오늘이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나 둘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치자, 보이지 않는 어떤 기류가 형성되면서 오늘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 버렸다. 오늘 입은 옷은 시월의 마지막 날에 입고 온 옷이 되었으며, 점심 때 먹은 비빔밥은 시월의 마지막 날에 먹은 비빔밥이 되었다. 커피를 마셔도 시월의 마지막 날에 마시는 커피가 되었고, 간식을 살 때도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서 사는 것이 되었다. 그건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날들 중의 하나였던 오늘이 누군가 던진 한 마디 말로 인해 마치 감염되듯이 번져서 특별한 날로 탄생된 것이다. 이것이 말의 힘인가? 아니면 시월의 마지막 날이 가진 특별한 힘인가? 혹은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 때문인가? 실은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으리라. 의미는 만들기 나름이니까. 평범하던 어느 하루가 특별한 날이 되는 건 사람 혹은 사물과의 개인적인 추억일테니까. '시월의 마지막 날'이란 특별한 날이 되기 위한 '계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타오르기를 기다리는 성냥개비처럼.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성냥개비는 젖지 않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