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시월의숲 2013. 11. 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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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조금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도 가을이 오고 있다고 말하고, 가을에는 조금만 기온이 떨어져도 겨울이 오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너무나도 성급하게 모든 계절을 미리 생각하고, 일찍 떠나보낸 것 같다. 정작 여름의 한가운데와 가을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을 때는 그것이 여름인지, 가을인지 인식하지 못한채. 계절이 오고 가는 것에 민감한 것은, 그 계절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 계절이 어서 가기를 바란다거나, 반대로 어서 오기를 바라면서. 혹은 조금만 더 머물기를 바란다거나, 반대로 조금만 더 늦게 오기를 바라면서. 내게 가을은 조금 더 머물기를 바라는 계절이다. 하지만 가을의 절정에서 겨울을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좀 불행한 일인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가을은 가고, 겨울은 올테니까.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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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는 낙엽처럼 가을이 가는 것에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아쉬움을 도대체 어쩔 수 있단 말인가? 오늘은 유난히도 그런 마음 때문에 가슴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오늘은 전국의 수험생들이 수능을 치는 날이었다. 어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하루종일 먹구름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다행히도 맑게 개었다. 대신 바람이 세게 불었다. 낙엽이 마치 새떼처럼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미 떨어진 낙엽에다 바람 때문에 떨어진 낙엽까지 가세해서 도로는 온통 낙엽들로 뒤덥혔다. 눈 덮인 풍경 만큼이나 멋진 풍경이었다. 낙엽을 밟으며 집까지 걸었다. 걸으면서 나도 풍경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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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는 늘 누군가의 이름을 말한다거나, 누군가 겪었던 일을 말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늘,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그것을 소위 뒷담화라고 하던가? 누군가를 험담하기 위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 말한다는 건 어쩐지 그 사람에게 좀 부당한 일인 것만 같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내 이야기만을 한다면 과연 타인과 얼마나 많은 말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겪고 내가 느낀 것들은 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작고 초라하다. 나는 내 우물 속에 비친 벽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우물 밖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는 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더 많은 이야기와 느낌을 알기 위해서는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진정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갇힌 우물의 벽에 대해서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을 보다 깊고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누군가는 흥미를 가질 수도 있을까? 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