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흔적들

시월의숲 2013. 11. 27. 23:39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일어날 시간이었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다른 느낌에 휴대폰 액정화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분명 일어나야 할 시간인데, 왜 아직 한밤중 같지? 나는 의아해하며 커튼을 걷었고, 그러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눈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흩날리듯 내린 눈을 제외한다면 올해의 첫눈이라 할만했다. 모름지기 눈이란 얼마간 쌓여야 눈이 '왔다'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붕에 쌓인 눈 말고는, 거리의 눈은 내리자마자 녹아버렸다. 바닥에 닿자마자 사라져버리는 눈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일터에 앉아 창밖을 자주 바라보았다. 눈은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며 하루 종일 내렸다. 늦은 오후가 되니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바닥에도 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여중생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얼마 쌓이지 않은 눈을 이리저리 밟고 다녔다. 그저께보다는 어제가,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더 추웠다. 아마도 내일은 더 추워지리라. 일기예보에서는 영하의 날씨가 될거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겨울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 놀랄 일도 아니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면 된다. 그러고 보니 11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눈처럼 내 몸에 닿아 사라진다.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 시간의 흔적만이 남는다. 잊히거나 기억될 흔적들. 하지만 언젠가는 그 흔적들마저도 희미해질 것이다. 저 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