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몰라몰라, 비올라 다 감바라니

시월의숲 2013. 12. 3. 21:54

11월의 마지막 날, 비올라 다 감바와 첼로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정명숙이라고 하는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의 연주였다. 플룻과 쳄발로, 피아노와의 협연도 있었다. 소공연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첼로도 아니고 비올라 다 감바 연주에!). 내게 공연 정보를 알려준 이가 시간을 30분 늦게 알려줘서 초반 15분 정도의 공연을 놓쳤다. 지금은 사라져버린(대중적으로 거의 연주하지 않는) 비올라 다 감바라는 악기와 쳄발로의 연주를 듣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연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었다. 더구나 문화적으로 낙후된 이 지역에서 말이다. 비올라 다 감바 연주를 직접 들어보니 첼로보다는 조금 높은 음색이었고, 다리 사이에 끼고 연주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활을 쥐는 방식도 여타 현악기들과 달랐다. 첼로와는 달리 비브라토가 거의 없다시피 한 연주로 음색이 조금 단조로웠는데, 아마도 그 때문에 실내악 연주에서 사라져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악기를 바닥에 지지해주는 봉이 비올라 다 감바에는 없어서, 보다 역동적인 연주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복적인 단조로움이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정직함 혹은 신념을 느끼게도 했다. 공연의 프로그램은 내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이 나왔는데,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라서 그런지 내겐 다들 엇비슷하게 들렸다. 하지만 바흐나 헨델, 브라가의 음악은 그 중에서도 유독 아름다웠다. 처음 듣는 쳄발로의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에는 첼로와 피아노의 협연도 있었다. 나는 첼로를 더 듣고 싶었으나, 짧은 곡 몇 개만 연주하고 끝나버렸다. 어쨌거나 비올라 다 감바의 연주를 듣게 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몇 개의 우연이 겹쳐서 나는 이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런 여러겹의 우연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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