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단호함에 대하여

시월의숲 2013. 11. 25. 20:46

너무나도 서슴없이, 단호하게,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신념은 얼마간 그를 주목하게 하고 때론 그 의견에 동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의견이 올바르고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들 수만큼 많은 의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의심스럽다. 어떻게 절대적이리만치 단호한 생각이란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진실이 거대한 바위같이 단호한 것이었던가? 그렇듯 자명하다면, 진실을 찾아 헤메는 사람들의 수고는 다 무엇인가?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거기서 끝난다. 단호함은 자신과 다른 어떠한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호함은 아집으로 빠지거나 독선과 맞닿아 있다. 진실이란 절대적인 것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회의하고 여러 번 생각하는 자세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흘러넘친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것을 바라보는 단 두 가지 태도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 가지 생각 중 어느 하나의 생각만을 취한다. 그러는 편이 보다 손쉽기 때문이다. 조금 더 섬세하고, 세밀하게 사건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적어도 그런 태도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말하며, 그것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지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물론 이런 내 생각또한 한 편으로 치우친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생각, 각자의 의견이라는 것이 있으므로.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만큼은 해야하지 않을까? 거기에 비로소 진실이 있을 수도 있음을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일지도 모른다'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우유부단하다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불온하다며 빨간 딱지를 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의견조차 묵살하는 것은, 자신이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었던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한번쯤 의심해 보라는 말조차 불온하다고 여기는 것은, 한없는 허탈감 속으로 나를 빠뜨린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눈을 멀게하고 귀를 막는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들의 역사는 우리에게 아무런 힘도 없다. 신조차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는 결코 배우지 않는다. 단지 답습할 뿐이다. 그것도 우리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그게 인간이라는 종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일까? 로맹 가리가 그랬던가. 아직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로맹 가리가 죽고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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