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저마다의 행복과, 저마다의 불행이 있을뿐

시월의숲 2013. 12. 8. 15:40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자리라서 다들 모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조금 일찍 만나거나 늦게 만났을 뿐, 결국엔 모두 만날 수 있었다. 한 친구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고, 다른 친구는 한창 결혼생활을 즐길 시기였으며, 또 다른 친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친구로, 그가 하는 모든 말이 믿기지 않고, 사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는, 그런 친구였다.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내 모든 비밀을 털어놓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어제 득남을 한 친구가 오늘이 아니면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이유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는데, 그가 하소연한 말들은 무척 놀랍고 시종일관 답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것은 누가 보더라도 행복한 일일 터인데, 그것만으로는 마냥 행복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가 나를 만나자마자 울화를 터뜨리듯이 한 말 - 결국 장인 장모와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못하다는 것 - 은 그의 행복에 어떤 장애를 느끼게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친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늘 입에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내가 보기에 그는 돈도 꽤 버는 것 같고(아직 나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가족들에게도 무척 잘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는듯했다. 특히 부인과의 관계에 많은 어려움을 호소했는데,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러면서 혼자 사는 나를 부러워했다. 혼자서 보고 싶은 거 보러 다니고, 읽고 싶은 거 마음대로 읽고, 사고 싶은 거 마음대로 사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며, 너무 부러워할 것 없다고, 행복이란 상대적인 거라고 말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가 가지고 있고, 그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 뿐, 그가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라거나, 내가 그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비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다른 행복과 조금씩 다른 불행을 가지고 있을 뿐. 함부로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비교하고 재단할 수는 없다. 부럽다는 감정은 자신이 지금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일시적으로 느끼는 상대적인 감정일뿐. 나는 때로 그가 부러울 때가 있다. 그가 나를 보며 부러워하는 모든 것이 사실 무엇을 대가로 이루어진 것인가를 안다면 그의 생각도 달라질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가진 각자의 행복이 나는 부럽다. 동시에 나는 모든 사람이 가진 각자의 불행을 생각한다. 마냥 행복하기만 하고, 늘 불행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것은 결국 '하나'의 동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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