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아하게 거절하는 법

시월의숲 2013. 12. 12. 23:36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때로, 아니 거의 모르겠다. 모르므로 당연히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나는 말이 많아지고, 하지 않아도 좋을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래서 후회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는 그래서 나를 곤란에 빠뜨린다. 누군가의 소개로 만난다는 행위 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데다, 커다란 부담을 안고 만나야 하는(물론 소개를 해준 사람은 부담없이 만나보라 하지만) 사실이 나에겐 무척이나 어렵고 낯선 일이기 때문이다. 운명적인 만남 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낯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자꾸 만나다보면 익숙해지고, 정도 들지 않겠냐고.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지 않다. 이건 상대방이 마음에 드느냐의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어쩌면 이것은 장애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장애, 관계맺음의 장애. 하지만 반드시 누군가를 만나야만 하는 것일까? 불편과 부담과 스트레스와 어색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하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것인가? 알 수 없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물감이 물에 섞이듯 자연스러운 만남이 불가능하다면, 나는 우아하게 거절하고 싶다. 우아하게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내키지 않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 내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